2021년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 글이 예정대로 블로그에 올라간다면, 내일이 2021년의 마지막 날이네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떻게 한 해를 마무리하고 계실지 궁금합니다.

많은 분이 그러시겠지만, 저에게도 2021년은 매우 특별한 해였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피우다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작년 겨울에 종종걸음으로 피우다 매장에 찾아가, 근처 카페에서 피우다 언니와 마주 앉아 이것저것 준비해둔 걸 보이며 섹스 칼럼을 쓰고 싶다고 한 날이 생생하네요. 그리고 블로그가 만들어지고, 매주 제 글이 올라오는 걸 보는 일은 놀랍고 대단한 경험이었습니다. 제가 재미있는 섹스 칼럼을 쓸 수 있을 거라고 말해준 M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진심으로 고마워요.

칼럼을 쓰고 3개월이 지났을 때 딱 한 번 조회 수를 확인한 적이 있습니다. 이 블로그는 미성년자에게도 열린 공간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에, 네이버와 같은 포털에 기반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아주 많은 분이 방문하실 거라 기대하진 않았어요. 이곳을 찾아오려면 피우다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계정, 혹은 드물게 제 개인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하셔야 할 확률이 높고, 포털에 어떤 단어를 검색해서 들어올 거라는 기대는 굉장히 낮았거든요. 그런데 그날, 천 명이 넘는 분이 제 글을 읽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2021년 상반기 가장 기쁜 날을 댈 때 늘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지요.

그걸 보고 나니 고양감이 느껴졌습니다. 아무도 댓글을 달거나 후기를 직접 전해주진 않아도, 누군가는 보고 있구나. 누군가는 가끔씩 혹은 꾸준히 내 글을 읽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다음 글을 쓰는데 동력이 되었습니다. 하반기에는 설문에 후기를 남겨주신 여러 독자 덕분에 또 지치거나 힘든 순간에도 칼럼만큼은 즐겁게 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이 경험이 무척 소중해요. 저는 오랫동안 스스로 글을 못 쓴다고,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피우다에서 마련하고 여러분이 지켜봐 준 이 공간에서 저는 처음으로 규칙적으로 마감하는 법을, 공식적으로 발행되는 글을 쓴다는 감각을, 내가 쓰는 글이 누군가에게 닿았을 때 어떻게 읽힐지를 고민하는 시각을 익혔습니다. 그런 과정을 1년간 거치면서 내가 재능이 있느냐 없느냐 판단하는 것보다, 내가 써서 내보인 글을 읽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실 당신은 제 은인이 되는 셈이죠.

몸에 대해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는 자체가 주는 해방감도 있었습니다. 십 대 때 받았던 성교육부터 시작해서 섹스 한 번의 기준이 무엇인지까지 평소에 생각하고 궁금해하던 걸 풀어놓을 기회란 얼마나 소중한지요. 특히 소수자들의 성생활에 무서울 정도로 답답하고 갑갑한 사회에서 산소 탱크 같은 날들이었어요. 어쩌면 변화가 더딘 이 사회에서 내년에도, 후년에도, 10년 후에도 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고 해야 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하기 시작했다는 것, 할 수 있다는 것이 무척 기쁩니다.

내년에는 블로그에도 변화가 있을 예정이에요. 어떻게 바꿔나갈지는 아직 비밀이지만, 더 다양한 이야기, 유용한 정보를 올리기 위해 피우다 언니와 함께 노력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또, 저는 1월 한 달간 휴식기를 가지고 2월에 돌아올 예정입니다. 그사이에 충전의 시간도 가지고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차곡차곡 모으도록 할게요. 그러니 내년에도 잊지 말고 찾아주세요!

2021년을 여러분과 함께해서 행복했습니다. 즐거운 연말 보내시고, 성평등한, 그리고 오르가즘이 가득한 새해 되시길 바라요! 곧 만나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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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페미니스트, 계약직 노동자, 팟캐스터 / 팟캐스트 '페어북 ; 페미니스트 퀴어 북클럽'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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