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 듀렉스, 사가미, 오카모토, 바른생각, 듀오… 전부 누군가 한 번쯤 들어봤을, 콘돔 판매 브랜드이다. 이렇게 유명한 브랜드가 아니라도 우리는 콘돔에 제법 익숙하다. 제법 익숙하다는 건 어떤 의미냐면, 콘돔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고 있고 아마 편의점이나 약국에 가면 팔 거라는 추측도 할 수 있고, 모텔에 비치되어 있다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 안다. 앞에서 언급한 브랜드 제품 외에 다른 제품들도 있다는 것쯤은 추측할 수 있고, 초박형이니 돌기형이니 하는 단어들도 심심찮게 듣는다. 모텔에 가면 놓여 있는 콘돔은 브랜드도, 제조일자도 추측할 수 없으니 되도록 사용하지 말라는 일종의 팁까지 돈다.

그렇다면 핀돔은 어떠한가? 손가락 콘돔, 혹은 핑거 콘돔이라도 불리는 핀돔이 내 인생에 들어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인생 성생활 극장 1막을 여성들과 함께 보냈는데도, 그 시기에 한 번도 핀돔을 썼던 적이 없다. 일단, 핀돔이라는 게 존재하는지를 몰랐다. 그러다 보니 당시에 중요한 건 손톱을 짧게 깎고, 손을 청결하게 관리하는 거였다. 여성애자들끼리 만나면 서로의 손을 보며 농담을 주고받곤 했다. 손톱이 조금이라도 길면 ‘요새 연애할 생각 없나 보지?’ 한다거나, 관리를 잘하는 친구를 보면 ‘아, 준비된 여자네, 당장도 가능하네’ 같은 이야기를 나누며 시시덕거렸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성관계에 임할 때 손가락에 무언가를 씌워야 한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렇게 살다가 핀돔의 존재를 어떻게 알게 됐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퀴어 커뮤니티 내에서 어떻게 주워듣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튼 핀돔의 존재를 알게 되자마자 부딪힌 두 번째 의문은 이것이었다. ‘근데 어디서 사?’ 그리고 하나 더. ‘이거 사면 나 강제 커밍아웃 아니야?’

물론 법적 성별 여성 간의 섹스에서만 핀돔이 필요한 건 아닐 거다. 위생을 신경 쓰는 사람들은 전희나 애무를 할 때도 사용할 수 있겠지. 하지만 당시에는 그렇게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서 파는지도 가늠이 안 되는데, 설사 판매하는 곳에 가서 핀돔을 달라고 하면 거절당하거나 어디 인터넷 게시판에 ‘오늘 우리 가게에 핀돔 사러 온 여자 봤다 레즌가봐’ 이런 글이 올라가진 않을까 걱정이 됐다. ‘핀돔을 팔 정도면 판매처가 퀴어들에게 안전하지 않겠어?’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청소년의 콘돔 구매가 합법임에도 불구하고, 판매자들이 ‘무슨 청소년이 콘돔이냐’며 역정을 내는 곳 아니던가. 심지어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핀돔은커녕 콘돔을 사본 적도 없었다.

어쩌다 핀돔을 구해도 박스 안에 포장도 되지 않은 골무 같은 것들이 아무렇게나 담겨져 있었다. 민감한 곳에 제법 오랜 시간 닿는 제품인데, 위생을 담보할 수 없어서 꺼림칙했다. 그래서 한동안 콘돔을 사서 핀돔 대용으로 쓰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크나큰 단점이 있었으니! 페니스는 하나인데 비해 손가락은 열 개라는 것이다. 열 손가락을 다 안 쓰더라도 무조건 두 개는 쓰고 보는데, 3개입 콘돔 한 박스를 사면! 부족할 때도 있지요!!! 손가락은 세우는 데 시간도 얼마 안 걸리는데 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그래서 몇 달 전, 피우다 SNS에서 새로운 핀돔 제품이 나온 것을 보고 엄청 설렜다. 특히 이브에서 핑거 콘돔이 나왔다니! 심지어 이브에서 나온 핑거 콘돔은 비건이었다. 할렐루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가 이브의 핑거 콘돔과 또 다른 핀돔 두 제품을 당장 구입했다. 그리고 전부 레즈비언 친구에게 선물했다.

  • 써봤어? 어때?
  • 이브 거는 윤활제가 넉넉해서 좋았고, 다른 건 윤활제 없는 거던데? 그래서 처음에 놀라가지고 애인이랑 둘이 이거 골문가? 하면서 수군거림.
  • 내가 지난번에 준 젤이랑 같이 써~~~
  • 안 그래도 그렇게 했어.

이제는 핀돔을 어디서 살 수 있는지, 그리고 어느 판매처가 안전한 지도 알았으니, 더 많고 다양한 핀돔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모텔에 콘돔과 핀돔이 같이 배치되는 그날까지, 핀돔이여, 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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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페미니스트, 계약직 노동자, 팟캐스터 / 팟캐스트 '페어북 ; 페미니스트 퀴어 북클럽'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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