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십대 때는 브래지어에 든 와이어가 흉부를 압박하는 느낌이 갑갑해서 브래지어를 하지 않거나 스포츠 브라를 하고 다녔다. 한창 2차 성징이 발현될 시기여서, 또래들은 너나없이 서로의 몸에 민감했던지라 그게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 동급생들 중에 소위 말해 ‘노는 애들’이 실수인 척 내 등을 만지고, 나중에 ‘넌 왜 브래지어 안 하냐’고 묻는 식으로. 그때는 그런 질문을 받는 게 수치스럽기도 했지만, 잠시의 수치보다는 일상의 편안함이 더 중요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가슴이 크고 무거워지면서 더는 스포츠 브라로 버틸 수 없게 되었다. (대부분의 초고도 비만 법적 성별 여성이 겪는 일이다) 가슴을 적절하게 버텨줄 크기의 브래지어를 찾는 것도 일이어서 속옷 매장을 몇 군데를 돌아다니곤 했다. 그로부터 또 몇 년 후에야, 지인들과 알음알음 ‘다양한’ 속옷 사이즈를 갖춘 곳들을 공유했다. 그렇게 구한 브래지어를 하루 종일 입고 다니다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속옷 고리를 풀면, 세상이 그렇게 시원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가슴 밑둘레가 얼마나 압력을 받고 있었는지 알고 싶지 않아도 늘 알게 된다. 그래서 몇 년 전, 탈브라 운동이 가시적인 효과를 보이던 시기에 나도 제법 오랫동안 고민을 했다. 안 입고 살면 정말 편할 텐데.

하지만 그게 되지 않는다. 브래지어를 벗으면 편하고 시원하지만, 무겁다. 대신 받쳐주던 천과 끈이 없으니 내 몸의 근육만으로 버티어 줘야 하는데, 인체에 대해서 아는 건 없지만 아무튼 이놈의 몸이라는 게 커다란 가슴을 팽팽하게 잘 잡아주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만큼은 삶의 경험으로 체득했다. 게다가 움직일 때 너무 거슬린다. 짧은 거리를 걸을 때 정도는 그래도 괜찮지만 스트레칭을 하거나 긴 거리를 걷기만 해도 덜렁이는데, 심지어 무거운 게 제멋대로 덜렁거려서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당연히 스트레칭이나 운동 같은 것도 할 수가 없다. 여름에는 가슴이 접히는 밑살에 땀이 찬다. 그리고 벗고 움직이는 시간이 길어지면 아프다. 아무리 벗고 살려고 해도, 길게 봤을 땐 입는 게 나은 것이다.

그에 비해 내 지인은 가슴이 작아서 속옷 매장에서 맞는 속옷을 고르는 것에 번번이 실패했다. 이놈의 속옷 시장에서 책정하는 속옷의 기준이 얼마나 좁은지, 큰 것도 작은 것도 구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탈브라 운동을 접하게 됐을 때, ‘그래, 안 입고 다니면 되는 거야!’ 라는 깨달음을 얻어 그때부터 어지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맨몸으로 다닌다. 얼마나 부러운지.

브래지어가 착용자의 건강에 안 좋다는 이야기는 브래지어를 착용할 때부터 들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집단에게만 브래지어를 입히려는 차별적인 압력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그리고 이제는 그 ‘당연하지 않은 당연함’에 의문을 제기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누군가에게 브래지어가 불편하더라도 입을 수밖에 없어서 입는 것을 선택하듯, 누군가는 브래지어를 입지 않기를 선택하는 것이 지금보다 자연스러워져야 한다. 그러한 변화를 앞당기고 있는 여성들을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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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페미니스트, 계약직 노동자, 팟캐스터 / 팟캐스트 '페어북 ; 페미니스트 퀴어 북클럽'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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