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별 일 없이 첫 청소가 지나가고, 그 뒤로는 내가 집에 없을 때도 클리너 분이 다녀가는 날이 종종 생겼다. 방문주기를 한 달에 한 번으로 하긴 했으나 한 달이 5주라서 너무 길거나, 서로의 일정을 조율하면서 날짜를 잡다 보니 그보다 빠르게 만나는 일도 있었다. 그때마다 화장실과 침대 머리맡에서(때로는 충전 때문에 책상 밑이기도 했다) 다양한 색으로 빛나는 반려가전들을 전부 끌어 모아 라탄 서랍에 넣어두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회사에 있는 동안 클리너 분이 청소를 하고 가기로 한 날이었다. 퇴근하면 깨끗한 집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란 생각에 기분이 좋아 퇴근길이 두 배로 즐거웠다. 실제로 집은 깨끗해져 있었고, 청소로 인한 스트레스도 크게 줄어 무척 행복했다. 옷을 갈아입고 침실로 들어간 순간,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침실에는 화장대 겸용으로 사용하는 가로 4단 선반이 있는데, 그 중 두 칸에 반려가전용 라탄 서랍을 넣어뒀었다. 그런데 선반에 놓여있던 물건들의 위치도 미묘하게 다르고, 선반을 넣어둔 깊이도 달라져 있었다. 아마도 클리너 분이 선반의 먼지를 닦으면서 물건을 움직인 모양이었다. 서랍을 열어본 것 같진 않지만, 열어봤다 해도 내가 어쩔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그 다음 달에는 제품을 전부 상자와 파우치에 나눠 담았다. 서랍을 열어도 상자와 피우다 파우치만 보이게 하는 게 목표였다. 그렇게 차곡차곡 테트리스를 하듯 상자들을 끼워 넣고 그 위에 파우치까지 얹자, 뒤져보지 않고서는 서랍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니 어쩐지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애초에 왜 내 돈 주고 합법적으로 구입한 물건을, 내 집에서 숨겨야 하는가. 섹스 토이를 사용하는 게 무슨 범죄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아는 언니도 몇 년 전에 나와 비슷하지만, 조금 더 강렬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언니는 섹스 토이가 두세 개 있는데 클리너 분을 고용한 뒤로 작은 바구니 안에 전부 집어넣고 천으로 덮어 옷장 깊숙이 넣어뒀다고 한다. 그리고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애인이 있어서 안 꺼내고 살 수 있었다고) 어느 날 귀가해보니 클리너 분이 섹스 토이를 전부 꺼내 깨끗이 씻어 잘 마르도록 건조대 위에 올려놨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우와악 지르고 말았는데, 아마 내 마음 어딘가에 클리너 분께 섹스 토이를 절대 들키면 안 된다는 의식이 확고했던 모양이다.

매 번 끙끙거리며 서랍에 숨기던 과거가 무색하게, 최근에 새티스파이어 1을 침대 옆 협탁에 그대로 두고 나왔다. 두고 나온 줄도 모르고 룰루랄라 일을 하다가 퇴근하니, 늘 그렇듯 집은 깨끗해져 있었고 협탁 위에는 캔들 워머와 썬크림, 로션과 새티스파이어 1이 줄을 맞춰 서 있었다. 정작 빼도 박도 못할 상황에 오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 막상 닥치면 별 일 아니었다. 최소한 나는 클리너 분이 새티스파이어 1을 씻어서 건조대에 말려놓은 건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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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페미니스트, 계약직 노동자, 팟캐스터 / 팟캐스트 '페어북 ; 페미니스트 퀴어 북클럽'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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