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게도, 갖은 고통 끝에 달거리가 시작됐다. 시작했다고 말하지 않고 피동형을 사용한 건 여기에는 내 자의는 전혀 없고 오로지 내 신체가 나의 의지와 반하여 일방적으로 시작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달거리가 시작된 이래, 나는 단 한 번도 달거리를 반긴 적이 없다. 게다가 이 유구한 아랫도리와의 싸움은 언제나 내 패배로 끝난다.

어쨌든, 약 4달 만에 시작한 달거리는 하필 내가 집 밖에 있을 때 진군나팔을 불며 진격을 시작했는데 아주 다행히 안전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였다. 게다가 시작 사흘 전부터 ‘밑이 빠질 듯이’ 아팠기 때문에 이 일방적인 전쟁을 겸허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월경용 파우치를 가방에 넣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불법촬영용 카메라가 그래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을 장소의 화장실을 골라 방문한 뒤 탐폰을 무사히 착용하는 데 성공했다.

sliced ripe grapefruit with tampon against orange background

첫 달거리 때부터 탐폰을 썼던 건 아니다. 내가 십 대 때만 하더라도 알고 있는 ‘위생용품’이라고는 생리대밖에 없었고 그중에서 날개가 있는 것과 없는 것 정도를 고를 수 있었다. 문제는 내가 어떤 생리대를 쓰더라도 피부가 물렀다는 데에 있다. 다행히 다낭성난소증후군 환자로서 달거리의 빈도가 적어 매달 고통을 겪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고통은 고통이었다. 할 때마다 새로운 달거리에 도전했고, 피부는 무르거나 벌게졌다. 쓰리고 아팠다. 생리통도 아프고 아랫도리에서 피도 흐르고 피부도 난리였다. 특히 여름이면 사람 꼴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아무도 죽이지 않은 내 자신을 존경한다.

anonymous woman touching stomach on couch

그렇게 돌려가며 생리대를 쓰다가 드디어 피부가 반응하지 않는 제품을 찾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 생리대가 덜 독해서가 아니라 그저 내 피부가 화학 약품이 가미된 생리대에 익숙해진 게 아닌가 싶다. 아무튼 그 당시에는 피부가 아프지 않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지경이었기에 그 제품에 안착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어머니와 함께 생협에서 천생리대를 만들게 되어서 천생리대와 일반 생리대를 번갈아 가면서 썼다.

천생리대는 일단 피부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아서 좋았다. 접착면이 내 성기에 달라붙지는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일반 생리대는 천년만년 썩지 않는다는데 환경을 어떡하나 이런 고민에서도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 어마어마한 (나에게) 단점이 있었으니. 빨래가 끝도 없이 나왔다. 천을 떼서 만든 천생리대를 써본 사람들은 당연히 알 테고, 안 써본 사람들도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달거리 동안 생리대 하나만으로 버틸 수 없다. 속옷에 고정하기 위한 겉천과 피의 양에 따라 개수를 달리 넣는 속천을 몇 개씩 빠는 것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게다가 내 피의 양을 가늠하여 적절한 시간에 갈아주지 않으면 높은 확률로 피가 샌다. 그럼 속옷도 빨아야 하고 최악에는 겉옷까지 빨아야 한다구? 으아! 결국 대학생활을 하며, 특히 좁디 좁은 기숙사에 살게 되면서 천생리대에게 이별을 선언했다. 미안하다. 대안을 찾아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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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페미니스트, 계약직 노동자, 팟캐스터 / 팟캐스트 '페어북 ; 페미니스트 퀴어 북클럽'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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