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그전에도 탐폰이라는 게 있다는 건 알았지만, 실물을 직접 본 건 십 대 후반이었다. 당시 집에 일이 있어 온 가족이 모여야 했는데, 친척 어른 중 한 분이 나에게 무려 탐폰을 사다 달라는 심부름을 시킨 것이다. 와. 나는 그때까지 단 한 번도 탐폰을 사본 적이 없었고 사용하는 사람도 처음 봤다. 우리 가문에! 탐폰 사용자가 있었어! (그 분이 오랫동안 해외에 거주했기 때문에 탐폰이 익숙했을 거라는 걸 나중에 깨달았다) 아무튼 그래서 지폐를 받아들고 편의점에 가서 당시 유일하게 매대에 있던 국내 탐폰 제품을 한 상자 사 들고 돌아갔다. 그게 나와 탐폰의 첫 만남이었다.

Woman walking down sidewalk

오랜 시간 그 만남을 잊고 있다가, 어느 날 아침 하반신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달거리를 하던 날이었는데, 자고 일어나서 생리대를 갈기 위해 주섬주섬 속옷을 벗던 중이었다. 잠든 사이에 생리대에 말라붙은 피가, 내 피부에 아주 불쾌한 감각을 남기며 떨어져 나갔다. 그런 일이 처음이 아니었을 텐데도, 그날은 유난히 생리대가 싫고 불편했다. 핏덩어리가 몸에서 흘러내리는 감각이 들 때마다 공공장소에서 실례하는 것만 같았고, 그런 상태로 일하기 위해 의자에 앉을 때마다 똥을 뭉개며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1초, 1초가 불쾌함의 끝이었다. 아, 이렇게는 못 살겠는데?

사람이 그런 순간에는 참 희한하게 추진력이 생긴다. 그 날 바로 탐폰을 살까 했는데. 그때 찾아본 정보로는 한국 탐폰이 그렇게 딱딱하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탐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딱딱하다고 하니까 어쩐지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 가랑이 사이에 딱딱한 걸 넣을 수 있지. 마침맞게 바로 다음 주에 일본으로 여행이 계획되어 있었다. 꿩 대신 닭이라고, 달거리를 우리나라 사람만 할 리가 없지 않나. 그렇다면 일본에도 탐폰이 있겠지. 스스로 생각해도 훌륭하고 논리적인 추론이었다. 그리고 다음 주, 일본의 꽤 유명한 만물상에 가서 동전파스와, 온열수면안대와, 휴족시간과. 클렌징폼과, 입욕제와 탐폰을 샀다.

washing hands

탐폰을 사용하기로 한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물론 처음 탐폰을 삽입했을 때는 얼마나 깊이 넣어야 하는지를 몰라서 다소 얕게 넣었고, 몇 시간 동안 고통스럽긴 했다. 그런 건 알아가면 된다. 넣으면서 내 몸에 맞춰가면 된다. 나는 어플리케이터가 있는 탐폰으로 시작해서 어플리케이터 본체 길이 정도만 넣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손잡이 부분까지 들어갈 정도로 쑥 넣어야 했다. 내가 그렇게 깊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그때 새삼 느꼈다. (설마 여러분, 제가 지금 피우다에서 18번째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데 이 시점에서 질막 얘기를 하진 않겠죠?)

탐폰은 흡수체가 몸 안에 있어서 피가 몸 밖으로 흐르는 느낌도, 질척거리는 걸 뭉개고 앉는 감촉도 느낄 필요가 없다. 그걸 빼고는 생리대와 똑같다. 제때 갈아주고, 양이 많으면 큰 사이즈를 쓰고 양이 적으면 작은 걸 쓴다. 오랜 시간 몸 안에 있으면 좋지 않으니까 잘 때에만 생리대를 착용한다. 물론 넣고 뺄 때 손가락에 피가 묻어서 가끔 난감할 때가 있긴 한데 물에 분해되는 물티슈를 사용하거나 휴지로 닦고, 볼일을 마친 후 나와서 손을 잘 씻으면 된다. 심지어 탐폰을 뺄 때 미묘한 쾌감도 있다. 아, 그리고 탐폰을 빼면서 알게 됐다. 왜 ‘딱딱한’ 탐폰을 사람들이 싫어하는지. 몸에서 탐폰을 빼낼 때 아주 거칠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woman showing female tampon in hand

요새는 훨씬 다양한 탐폰 제품들이 팔리고 있다. 잡화점에서 해외 제품도 구매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원한다면 직구를 할 수도 있고, 국내 회사에서도 탐폰을 파는 곳이 여럿 생겼다. 어플리케이터가 있는 제품도 있고, 없는 제품도 있으며, 어떤 회사에서는 탐폰과 생리대를 정기 배송해주는 서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달거리를 안 하는 방법은 아직 없는 것 같으니, 하는 동안만이라도 그나마 편하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의 다음 목표는 플라스틱 생성을 줄이기 위해, 지금 있는 탐폰을 다 쓰면 어플리케이터 없는 탐폰으로 갈아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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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페미니스트, 계약직 노동자, 팟캐스터 / 팟캐스트 '페어북 ; 페미니스트 퀴어 북클럽'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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