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찔려서 공언하지는 못 했는데, 사실 나는 몇 개의 반려가전을 나눔 보냈다. 나눔을 대기 중인 반려가전도 있다. 찔린 이유는 다른 건 아니고, 직접 산 제품도 있지만 협찬받은 제품도 있어서 그렇다. 나름대로 신뢰를 대가로 주고받은 것들인데 이렇게 마음대로 누굴 줘도 되는 걸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도 알음알음 나눔을 보내기 시작한 데에는 피우다 언니가 스쳐 지나가면서 한 말을 슬쩍 귀담아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건 친구 줘도 돼요. 찝찝하면 새 흡입구만 사서 바꿔도 되고요.”

그때 우리가 보고 있었던 건 새티스파이어 1이었다. 아마 내가 에어프레셔용 제품 협찬을 여러 개 받으면서 제품 간의 사용 빈도가 차이 나기 시작했다고 이야기하던 중이었던 것 같다. 피우다 언니는 실리콘 제품들은 잘 닦아서 사용하면 잔여물이 크게 남지 않아 괜찮다고 했다. 사실 그전에 이미 친구에게 첫 반려가전이었던 ‘가이아 에코 바이브레이터’를 나눔 보냈던 전적이 있던 터라 언니가 지나가듯 했던 말에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가이아’를 나눔 받은 친구에게 조심스럽게 운을 떼었다.

혹시… 우머나이저에도 관심 있니?

다행히 친구는 우머나이저에도 관심이 있었다. 나는 새로운 흡입구를 사는 대로 우머나이저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딜도형 바이브레이터인 ‘가이아’는 그대로 보냈으면서 이제 와 흡입구를 바꿔 보낸다니, 어쩐지 뒤늦은 조처 같아 신경이 쓰였다. 물론 그때도 사용하던 제품을 보내는 거라고 설명하고 충분히 양해를 구하긴 했지만, 미안한 건 미안한 거니까. 그래서 더욱, 이번에는 꼭 새로운 흡입구를 보내주고 싶었다. 그러나 친구는 사정을 듣더니 이번에도 괜찮다고, 그냥 보내줘도 된다고 했다. 혹시 몰라 재차 물어봤는데, 정말 괜찮다고 답했다. 다행히 피우다에서 샀거나 받은 제품은 패키지를 그대로 갖고 있어서, 마치 갓 구입한 것처럼 그대로 포장해서 보내줄 수 있었다. 미안한 마음이 0.0001 정도 가셨다. 송장 번호를 보내주며 나는 친구의 깊은 우정이 이런 쪽으로도 깊구나 싶어 다소 감복했다(나중에 확인해보니 우머나이저를 빨리 갖고 싶은 마음이 컸던 거였다고).

우머나이저 스탈렛2가 별로여서 보내주었던 것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까지 써봤던 흡입형 제품 가운데 흡입구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이 우머나이저 스탈렛2이다. 색감을 포함한 디자인과 성능, 가격 면에서 아주 가성비가 좋은 제품이다. 하지만 우머나이저 클래식이 생기면서 스탈렛2의 짧은 길이를 대체하고, 뒤이어 찾아온 위바이브 멜트는 흡입구 앞 튀어나온 부분이 없어 삽입형과 같이 사용할 수 있게 되고, 충전식 제품의 불편함을 새티스파이어 1이 보완해주니 어느새 스탈렛2는 최애인 듯 최애 아닌 최애 같은 제품이 되었다. 훨씬 더 자주 손길을 느낄 가치가 있는 훌륭한 제품이 침대 머리맡 한쪽에 누워 있는 게 자꾸 마음이 쓰였다. 그래서 나눔을 결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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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페미니스트, 계약직 노동자, 팟캐스터 / 팟캐스트 '페어북 ; 페미니스트 퀴어 북클럽'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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