왁싱을 한 지 5년 정도 되었다. 지금은 그래도 왁싱을 하는 사람이 예전에 비해 는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사회의 인식이 얼마나 변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내가 바뀌었으니 사회도 바뀌었겠지, 싶다가도 내 주변에 왁싱하는 사람 비율은 변하지 않았으니 나만 변했나 싶기도 하다.

내가 왁싱을 한다고 하면, 대부분 성감(性感)을 위해서 한다고 생각한다. 시술하러 들어오는 왁서 선생님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니 나도 모르는 어딘가에 왁싱을 하면 성감이 좋아진다는 썰이라도 도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제가 또 만인이 가는 길에는 발을 들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 아니겠습니까? 성감을 돋우기 위해 왁싱을 한 건 아니고, 너무 아파서 시작했다.

무엇이 아팠냐고요? 보지가 아팠습니다. 털 때문에요. 어느 날부턴가 가랑이 사이가 아프고 따갑고 쓰리고 부었다. 뒷물을 해도 나아지는 게 없었고, 그렇다고 상처가 난 것 같지도 않았다. 몇 개월을 그렇게 아팠는데 부위가 부위다 보니 누구에게 말하거나 도움을 요청하기도 민망했다.

그러던 어느 날, SNS에서 어떤 남성분이 ‘겨울에 내복을 입으면 내복 안에서 다리털이 꼬여서 아프다’고 쓴 걸 발견했다. 그 글을 읽자마자, 와우! 바로 깨달음을 얻었다. 내 아랫도리가 아픈 게 바로 털 때문이었구나!!! 그때부터 열심히 왁싱에 대해 찾아보고, 주변에 왁싱 해본 사람에게 정보도 얻으면서 언젠가 왁싱을 하겠다는 큰 꿈을 키워나갔다.

그리하여 서울 모처에 있는 왁싱샵을 방문하여 털을 싹 뽑아버렸다. 그러고 나니 통증 역시 싹 사라졌다! 전부! 언제 그랬냐는 듯! 나는 몸에 털도 많고 머리숱도 빽빽한 편인데, 같은 몸에 난 털이라고 음모도 숱이 많았다. 게다가 굵고 억세고 곱슬거렸다(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돼지털 같은 머리카락’을 생각하면 된다). 그러다 보니 털들이 서로 꼬이거나 피부와 마찰을 일으키면서 통증이 발생했던 것이다. 원인과 결과를 알고 나니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산부인과에 갔으면 좀 더 빠르게 답을 얻었을 수도 있었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론 과연 지금, 같은 일이 생겨도 기껍게 산부인과에 갈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이게 음모 때문이라는 걸 얘기해주었을까? 아니면 별거 아니고 피부가 부었을 뿐이니 잘 관리하라고 했을까? 산부인과에서 외음부에 대한 진료도 하나? 이런 질문들. 예전에 비하자면 산부인과를 방문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많이 줄어들었는데, 산부인과에서 무엇을 어떻게 진료할지에 대한 신뢰는 여전히 부족한 것 같다. 

어떤 분이 ‘왁싱이 꼭 필요한가요’ 라고 물어보신 적이 있는데, 그럴 리가 있나. 만약 우리 몸에서 음모를 뽑아내는 게 그토록 중요했다면 역사서 어딘가에 분명히 다섯 군데 이상 쓰여 있어야 하는데 그런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나처럼 통증 때문에 털을 뽑는다거나, 왁싱의 유무에 따라서 성감이 크게 차이가 난다면 ‘개인의 필요’에 따라 결정하면 된다. 궁금해서 한 번쯤 해보고 싶다면 주변 털만 정리하듯이 조금 뽑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저는 부끄러워서 하기 싫은데 애인이 자꾸 왁싱을 하라고 해요’ 라던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아, 제발 파트너가 불편해하는 일 좀 권하지 말고 본인이나 하시라. 본인의 성감은 스스로 관리해야 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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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페미니스트, 계약직 노동자, 팟캐스터 / 팟캐스트 '페어북 ; 페미니스트 퀴어 북클럽'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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